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櫻花

By 한하재

  멸망의 시작은 새로운 품종으로 떠오르는 관상용 식물이었다.

  햇빛이 없어도 잘 자라고 크게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되는 다육이 식물.

  특징이라면 줄기식물임에도 포자를 내뿜는다는 것이었다. 이파리에서 장식을 위해 뿌리는 글리터마냥 반짝거리는 포자를 내뿜기에 젊은 세대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인기가 있었다. 포자는 유독성이 없는것으로 밝혀졌고,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문구 한 줄이 끝이었다.

 

  식물은 마트나 다이소의 식물코너에서도 팔 정도로 흔해졌다. 식재료를 사러온 사람이 식물코너를 지나치다가 혹해서 하나씩 집어드는 모습을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을정도였다.

 

  “두목! 이거 이쁜데 사자!”

  “음… 이거 고양이 키우는 집에는 안된다는데?”

  “두목, 우리 고양이야..?”

  “으에잇, 쥰내 뭐라 그러네. 사면 될거아냐!”

 

  두목이라 불린 남자는 제일 작은 화분 하나를 들더니 쇼핑카트 안에 집어넣었다.

 

  남자는 자신의 가게로 돌아와 앵두들과 짐을 정리하며 식물을 카운터 위에 장식해두었다.

식물이 내뿜는 반짝거리는 포자를 멍하니 바라보고있던 남자는 우동그릇이 우당탕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짐을 마저 정리하러 갔다.

 

  평범한 며칠이 지나고, 남자는 평소와 같이 느지막히 일어났다. 

 

  평소와 다른것이 있다면, 이불에 피어있는 작은 꽃이었다.

  ‘앵두를 잘못본건가..’ 하고 눈을 비비던 남자는 앵두처럼 희고 작은 꽃이 정말로 자신의 이불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라 습해서 꽃이 폈나’ 하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이불에 붙어있는 꽃을 조심스레 떼어내어 2층 베란다에 놓여진 다육이 화분에 함께 심어주었다.

 

  이불을 정리하고 앵두들과 함께 늦은 아침을 먹은 후 1층으로 내려와 가게 준비를 했다. 앵두들이 행주로 테이블을 닦을 동안 남자는 카운터 위에 장식해둔 실바니안 인형과 다육이들의 먼지를 털어주었다. 먼지를 털던 남자는 문득, 무언가 달라져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몇 주 전에 사왔던 식물이 자랐다.

 

  정확히는 뿌리가 화분을 깨트리고 자라나 카운터에 박혀있고, 줄기를 길게 내어 이파리를 쭉 뻗은 모습이었다.

  ‘원래 이렇게 자라는 식물이었나?’ 하고 한참을 바라보고있던 남자는 곧 반짝이는 이파리들 사이로 작은 꽃을 발견했다. 언제 폈는지도 모를정도로 작은 꽃이 꽃잎을 활짝 펴고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남자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앵두들에게 꽃을 보여주며 다같이 옹기종기모여 작은 꽃을 구경하였다.

  곧이어 오픈시간이 되어서 관찰이 더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자는 앞치마를 매며 가게 마감 후에 꽃을 다시 담아둘 화분을 사와야겠노라고 생각했다.

 

  마감 후 다시 본 카운터 위 식물은 아까보다 꽃이 더 많이 피어있었다. 뿌리는 카운터의 포스기와 닿을정도로 자라있었다. 물도 안줬는데 왜이렇게 많이 자랐는지 의문을 품던 남자는 인터넷으로 식물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자세한 정보를 찾기 위해 스크롤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검색버튼을 누르자마자 ‘살인 식물’, ‘사람이 식물로 변해 화제’ 등 온갖 자극적인 키워드가 가득한 최신 뉴스가 쏟아져내렸다.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들을 보며 의아해하던 남자는 곧 저녁 뉴스를 할 시간이라는것을 떠올리고 거실에 놓인 TV를 켰다. 가게 마감 후 쉬고있던 앵두들도 각자 간식거리를 쥐고 남자의 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광고를 조금 기다리자 곧이어 뉴스가 시작됐다. 첫 소식부터 식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현재 전국적으로 사람이 식물로 변이하는 괴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 일부가 식물로 변했거나 식물이 사람의 형체로 자라있는 사진 자료들이 나오며 설명이 이어졌다.

 

  ‘해당 현상의 원인은 최근 유행하던 OO식물의 포자였던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속적으로 식물이 뿌리는 포자를 직간접적으로 흡입한 경우 신체가 식물로 변이하는 희귀병에 걸리게 되고, 식물의 꽃과 접촉할 경우 병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반나절만에 식물로 변하게된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질병의 전조증상으로는 온몸에 가려움을 느끼고 손발이 저린 증세를 나타낸다고 설명하였다.

 

  “두목두목, 저거 진짜야?”

  “....나도 몰라”

 

  같은 주제로 뉴스 출연진들이 해당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던 도중, 긴급 속보라면서 해당 내용이 오보였다는 소식이 떴다. 식물 판매 업체의 바이럴 마케팅이었다며 해당 내용에 불안감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뉴스가 끝나버렸다.

 

  어안이 벙벙해진 남자는 SNS로 해당 내용을 더 찾아보려했으나 마침 SNS 서버가 다운되어버린 탓에 더 찾아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 날 이후로 뉴스에는 더이상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고, 며칠간은 사람들 입에서 식물 이야기만 나오곤 했지만 그 마저도 시들해졌다. 남자는 우동가게를 운영하고있는지라 가게 손님들이 식사를 하며 말하는 정보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대개 음모론 위주였다.

 

  ‘다른사람의 옷에 붙은 포자와 접촉해도 감염이 되며, 전세계인들이 이미 감염되어있다’, ‘식물은 번식을 위해 사람을 감염시키며 감염자가 식물의 꽃가루와 접촉하면 사람을 식물로 변화시키는거다’, ‘이 사실을 뉴스가 밝힐 수 없는 이유는 정부의 압력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식물이 되어서 진실을 밝힐 사람이 모두 죽은거다’ 등등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남자도 사람들의 말을 음모론 정도만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뉴스를 들은 후 그 다음날에 식물을 바로 쓰레기장에 버려버렸다.

 

  일주일 후,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다시 찾은 쓰레기장에는 쓰레기더미와 함께 쓰레기들을 뒤덮은 거대한 식물줄기들이 있었다. 식물 줄기는 쓰레기더미를 뚫어버려 쓰레기장에 악취를 풍기고 있었으며, 일부는 벽 콘크리트를 부수고 자라나기도 했다. 쓰레기장 판넬을 뚫고 자란 식물을 신기한듯이 콕콕 찔러보는 앵두를 황급히 낚아채며 쓰레기만 버리고 급하게 돌아섰다.

 

  묘한 기분으로 가게로 돌아온 남자는 자신을 기다리던 앵두들을 보고는 표정을 고치며 아무일 없었는듯이 다시 앞치마를 입었다.

 

  평소처럼 장사를 하며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도 하고 손님용 어묵 몰래먹은 앵두들을 혼내기도 하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비명소리로 일순간 평화가 깨졌다.

 

  돌아보니 우동을 먹고있던 손님의 손끝이 식물로 변해가고있었다. 주변에 앉아있던 손님들은 경악을 하며 가게를 나가버리기도 하고 해당 현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남자는 일단 119를 부른 후 다른 손님들을 내보냈다. 감염증세를 보인 손님은 다행히 제시간에 구급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손님의 발은 이미 식물로 변해 가게 바닥을 뚫고 자라나버리는 바람에 자를 수 밖에 없었다. 구급차를 떠나보내고 가게로 돌아온 남자는 쓰레기를 버리면서 목격한것과 방금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떠올리며 식은땀을 흘리고있었다.

 

  그러다 가게가 묘하게 썰렁한것을 깨달았다.

 

  앵두들이 없었다.

 

  무서운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즈음, 윗층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2층에 올라가보니 앵두들은 이불 속에 들어가 서로 끌어안으며 덜덜 떨고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남자는 조심스레 이불을 걷어내고 앵두들을 끌어안아주었다.

 

  가게 바닥에는 온기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손님의 신발과 바닥 타일을 깨고 자라있는 식물만이 남아 있었다. 앵두들을 재우고 내려온 남자는 창고에서 꺼내온 연장들로 식물을 뿌리째로 뽑아냈다. 그러곤 뒷마당에 놓여있던 드럼통속에 전부 넣어버리고 불태워버렸다.

 

  하루종일 겪은 이상한 일들 때문에 지쳐있던 남자는 앵두들이 타일조각을 밟지 않도록 한켠으로 치워두기만 하고 먼저 잠들어있는 앵두들 곁에서 같이 잠들었다.

 

  답지않게 앵두들보다 일찍 일어난 남자는 또다시 이불에 피어난 꽃 한송이를 발견하였다. 정확히는 앵두가 자고있어야 할 곳에 꽃이 피어있었다. 남자는 황급히 침대에 아직 자고있는 앵두들의 수를 세어보았다.

  아이들이 몇명 없었다. 다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려고 했으나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무언가를 밟고 휘청였다. 침실 방문의 바닥에서부터 줄기가 이불까지 자라나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방 밖으로 나가자 온 집안이 식물의 줄기로 뒤덮혀 있었다. 남자는 바로 앵두들의 방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식물줄기가 문 전체를 가로막고있어 쉽지 않았다. 줄기를 손으로 잡아 찢어 겨우 문을 연 남자는 탄식했다.

 사라진 앵두들은 그곳에도 없었다. 단지 하얀 꽃이 몇개 더 피어있었을뿐이었다.

 

  그제서야 창 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귀에 들려왔다. 식물로 뒤덮힌 창문을 낑낑거리며 연 남자는 난장판이 된 세상을 가만히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모든 건물의 벽은 초록 식물들이 퍼져있었고, 도로 바닥은 갈라져 그 틈 사이로 굵직한 식물들이 자라나있었다. 곳곳에 사람모양을 한 식물들도 있었다. 대부분 도망치는듯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쉬지않고 울려퍼졌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망할수도있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남자는 TV를 켰다. 뉴스에는 전국적으로 기현상이 발생하였으니 안전한 실내에서 머물고 있으라는 소식만 전하고 있었다. SNS에는 사고현장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실내도 안전하지 못하니 식물이 없는 지역으로 대피하라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공유되었다. 전화기는 이미 먹통이었다. 아마 인터넷도 곧 끊길것이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하려고 수도꼭지를 돌렸으나 화장실 배관에서 무언가 막힌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반짝거리는 포자가 섞인 물이 나왔다. 아무리봐도 피부와 닿으면 큰일날것같이 생겼기에 그대로 흘려보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자는 이내 자고있던 앵두들을 깨웠다. 그리고 이사를 가야하니 방에 가서 각자 짐을 최소한으로 챙기고 나오라고 전했다. 갓 깨어난 앵두들은 눈을 비비고는 “두목 우리 이사가?”, “두목이 그런대면 그래야지” 라며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남자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필요한 생필품과 물건들을 챙겨나왔다. 그리고 앵두네 방의 방문 앞에서 앵두들이 짐을 다 챙길때까지 지켜봐주었다.

 

  “두목두목, 우리 이사 어디로 가?”

  “옆 도시로 갈거야. 지금 버스나 택시가 없으니까 걸어가야돼”

 

  앵두들이 넥타이를 매는 동안 남자는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지도를 꺼내들고 옆 도시로 가는 길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가는동안에 사용할 소형 라디오도 챙겼다. 아저씨같다고 중얼거리는 앵두에게 버럭하며 삐진티를 내다가 오랜만에 일상적인 행동을 한것같아 크게 웃었다. 그리고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앵두들과 함께 집을 나왔다.

 

  피난민 행렬에 섞여 옆 도시로 걸어가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소식들만 가득했다. 점심즈음에는 대통령이 나라를 버리고 해외로 도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저녁이 되었을때는 준공식적으로 국가 괴멸상태가 되었다. 밤에는 머물만한 건물이 없어 밖에서 단체로 노숙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노숙하는 그들을 언짢게 보는 이는 없었다.

 

  다음날에 도착한 첫번째 도시는 원래 있던 동네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역시 인터넷은 믿을게 못된다고 중얼거리던 남자는 2순위에 있던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시마다 상황은 비슷했다. 바닥은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깨져있었고 건물 벽을 식물이 온통 뒤덮고있어 건물의 색이나 간판조차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야생동물들이 종종 보였기에 길바닥에서 노숙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과 식물이 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도망치는듯한 모습이 많았다면 지금은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모습의 형태를 자주 보이고있었다.

 

  5번째 도시에 도착한 남자는 오랜만에 깨끗한 건물을 찾아내어 기분이 좋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앵두들과 함께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밖을 둘러본 남자는 사람들이 화염병과 횃불을 들고 식물에 불을 지르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차례차례 식물에 불을 붙였고, 이윽고 남자가 머물고 있는 건물까지 도착했다. 남자는 다급하게 밖으로 뛰쳐나오며 안에 사람이 있고, 하룻밤만 묵고 갈 것이라 말했다. 사람들은 식물이 있는지만 확인한다면서 안으로 밀고들어왔다.

  내부를 둘러보던 사람들은 앵두들을 가리키며 저것도 식물같은거 아니냐면서 불질러야한다며 횃불을 들이밀었다. 남자는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보시라며 자기가 키우는 아이들이라며 설명하려 했지만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남자를 밀쳐내고 불붙인 화염병을 던지려 했다.

  그순간 남자는 리더의 팔을 잡고 반대쪽으로 꺾어 화염병을 빼았았다. 그러고는 화염병에 달린 헝겊을 빼더니 병을 건물 입구에 던졌다. 그는 불이 붙은 헝겊을 손에 쥔 채로 으르렁거렸다.

 

  “지금 조용히 나가지 않으면 당신들까지 모조리 태워죽이는 수가 있어. …당장 꺼져.”

 

  겁을 먹은 사람들이 모두 나가버리자, 남자는 손에 들고있던 헝겊을 창밖으로 던지고는 너무 뜨거웠다고 속상해하며 깨끗한 생수로 손을 씻고 주머니에 넣고다니던 손수건으로 손을 싸맸다.

 

  저녁을 먹자마자 도시를 빠져나온 남자는 옆 도시로 가는 길에 있던 언덕 위 정자에 앉아서 불타는 도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라디오에서는 공항과 항구가 폐쇠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있었다. 더이상 갈곳이 없었다. 앵두들에게 물어봐도 집에 가서 우동 먹고싶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렇다면 돌아가는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남자는 곧 앵두들 곁에 누워 잠을 청했다.

 

  탄내가 가득한 아침을 맞은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앵두들의 수를 셌다. 집을 떠난 후부터 하루 루틴처럼 하는 일이었다.

  오늘은 한마리가 없었다. 앵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하얀 꽃이 피어있었다.

  남자는 꽃을 말없이 내려다보더니 뿌리채로 뽑아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앵두들에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집으로 가는 동안 더 많은 앵두들이 꽃이 되었다. 자신이 자는 사이에 꽃이 되는지라 자지 않으면 괜찮지않을까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으로 밤을 꼬박 샌적도 있다. 그러나 항상 결과는 같았다. 남자의 가방은 이제 생필품보다는 하얀 꽃들로 가득 채워지고있었다.

 

  종말이 시작되고 집이 있는 도시를 떠난지 딱 2주가 된 날, 남자와 몇 마리의 앵두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도시를 떠날때는 사람들이 북적였으나 지금은 야생동물 몇 마리만이 황폐화된 도로를 서성일 뿐 이었다. 이곳에도 불을 지르고 다닌 사람들이 있었는지 그을음과 잿더미가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들은 그 위를 뒤덮고 다시 자라나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도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지만 침실과 베란다, 앵두의 방에 피어났던 꽃들은 그대로 있었다. 앵두들이 신이나서 집을 구경하고있는 동안 남자는 앵두꽃들이 그대로 있다는것에 안심하며 꽃을 만지는 순간 온몸에서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남자는 피난행렬동안 배운것이 하나 있었다. 온몸을 마구 긁고있는 사람 곁에는 가까이 가지 말것. 

  그리고 그 사람은 곧 식물이 된다는 것.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짓씹으며 가려움을 참아내던 남자는 가방속에 있던 꽃들과 집에 자라난 꽃들을 모아 작은 부케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꽃들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남아있는 앵두들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얘들아, 언제나 사랑하고. 두목 피곤해. 이제 자러갈거야”

  “두목 졸려?”

  “우리가 자장가 불러줄까?”

  “괜찮으니까 얼른 가. 나 어른이야 혼자 잘 수 있어”

 

  괜찮은 척 웃으며 손짓을 하던 남자는 자신의 손끝이 식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더 이상 우리애들을 만지지 못하겠구나…’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식물이 되기 싫어. 두려워.

  무서워.

 

  “두목! 오늘도 같이자자!”

 

  곁에 남아있던 앵두들이 남자를 끌어안으며 품에 안겨왔다.

 

  남자는 앵두들을 끌어안은채 웃으며 “그래, 그러자” 라고 하였다.

 

  다음날, 침대 위에 남은 것은 인간 형태의 식물 한 구와 그를 둘러싸고있는 앵두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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