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세가 자취 분가를 임시 대피소로 지정했네
By 익명
남궁 세가 자취 분가를 임시 대피소로 지정했네
“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일세.
”
반갑소이다, 소형제. 나는 이 집의 주인인 남궁혁이라고 하네.
자네가 이 편지를 발견했다는 것은 아마도 대피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겠지. 살아남아 주어 고맙네. 비록 자네를 직접 구해낼 수 없어 비통하기 그지없지만, 자네도 이해해 줄 거라고 믿네.
아마 나는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집을 비워 자리에 없을 걸세. 그러니 부디 이 편지를 주의 깊게 읽고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잘 버텨주길 바라네. 아, 습격에 대비해 언제나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것 잊지 말고.
그러면 무운을 비네.
一. 이 집은 매우 안전하네. 그것들이 접근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들어오지는 못해. 우연히 이것저것 실험해 보았는데, 상당히 멍청하더군. 아무래도 지능이 아주! 낮은 모양이네. 그러니 이곳에 있는 동안은 걱정하지 말게. 나는 자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바라고 있네.
二. 집 내부는 마음껏 구경해도 좋네.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갖춰 놓았으니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을 걸세. 다만 밤이 된 후에는 집의 모든 불을 끄게. 그것들은 빛에 예민해서 희미한 등불만 보고도 쫓아오더군. 유인책으로 야명주를 몇 군데 달아놓았네. 자네가 무사히 지낼 수 있게 조치를 취해 두었지.
三. 은으로 된 물건이 있다면 꼭 지니고 다니게. 그것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무기이네. 다른 방법은 통하지 않았네. 은자를 가지고 있다면 그거라도 던지게. 다들 비상금 정도는 가지고 다니지 않은가. 인제 와서는 그것도 의미 없게 됐지만.
四. 위쪽으로 가 보면 작은 샘이 하나 있네. 그러니 식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소이다. 이왕이면 매일 떠서 마시는 것을 추천하네. 이런 상황일수록 신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급할 때 도망치기도 쉽지 않겠나! 아, 참고로 근처에 뭔가 있어도 무시하게.
五. 어쩌면 그것들이 아닌, 같은 인간을 상대로 싸워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네. 참 슬픈 일이지. 서로 힘을 합쳐 싸워도 모자랄 판에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다니 말이야. 그래도 약해지지 말게. 그들을 사람이라고 과연 부를 수 있을까?
六. 매일 자신이 누구인지 되새기게. 얼마나 많은 소형제들이 모일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혼자 남았다면 잊지 말게. 자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생각을 멈추면 안 되네.
七.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짚고 넘어가겠네. 문단속하는 걸 잊지 말게. 아무리 멍청해 보이는 놈들이어도 가끔 열린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더라고. 꼭 문을 잘 닫았는지 확인하게. 잊어버리는 순간 이미 때는 늦었을지도 모르네.
八. 장발을 풀어헤친 노인을 조심하게. 이따금 문을 두드리며 찾아오곤 하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사람이 있는 티를 내면 안 되네. 혹시 부르는 목소리에 대답했다면 자네를 이곳의 식솔로 소개하게. 노인이 부정하거든 새로 고용되었다고 끝까지 우겨야 하네. 강조하겠네. 장발을 풀어헤친 노인이 오는지 안 오는지 잘 살피게.
九.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여인도 가끔 찾아오네. 이해하려 들면 어려우니 그냥 받아들이게. 그럼 알기 싫어도 자연히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네. 그녀를 친절히 대해주게. 내가 보낸 사람이니 믿어도 좋소이다.
十. 망을 봐야 할 때가 생길 걸세. 그럴 때는 지붕 위로 올라가면 되네. 그곳이 시야가 가장 트여 있어 멀리까지 살피기 좋거든. 아마 여러 명이 한 번에 올라갈 수는 없어서 혼자 올라가야 할 텐데, 이때는 반드시 자네의 직감에 따라 행동하게. 그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말게.
十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면 포기하게. 곧 때가 올 거네. 포기하고얌전히 몸을 맡기는 게 좋네.
十一. 계속해서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네. 이때 절대 그대로 행동하면 안 되네. 그건 자네 스스로 한 생각이 아냐. 몸을 묶어서라도 밖에 나가지 말게. 해가 지면 나가도 좋소이다.
十二. 그래도 밖에 나가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면, 혹은 함께 있는 동료가 그렇다면, 안타깝지만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네. 부디 밤에 나가고 싶어 하길 바라는 수밖에. 낮에 나가고 싶다고? 자네 제정신인가? 그걸 반대로 행동하게.
十三. 겉모습만 멀쩡한 짐승이 간혹 나타날 때가 있네. 아무래도 여기가 민가와 가까운 곳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네. 고기를 먹고 싶어도 그 짐승을 잡아먹을 생각은 절대 하지 말게. 그래야 자네가 사네.
十四.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것들은 애초에 자연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군.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 낸 걸까. 혈교가 만들어 낸 강시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보려고 노력은 했네만……. 해볼 방법은 전부 실패했네.
十五. 글자가 뒤집혀 적힌 부적이 벽에 붙어있다면 떼서 태워주게. 절대 부적에 적힌 글자를 오래 쳐다보면 안 되네. 명심하게. 나도 겨우 막아내는 수준이거든.
十六. 일지가 근처에 있을 걸세. 매일 적어 준다면 고맙겠소이다. 아마 펼쳐 보면 내가 적은 후로도 다른 소형제들이 채워 놓았겠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다른 소형제들의 소식도 접하고, 혹시라도 자네가 떠난 뒤 이곳을 찾을 소형제에게 안부도 남기게나. 다만 푸른 글씨로 ‘하늘을 깨웠다.’라는 문구가 적힌 장이 있다면 남은 장을 더 읽지 말고 그대로 덮고 뒤표지가 위를 향하게 엎어두게. 그리고 동쪽으로 멈추지 말고 계속 걷게.
十七. 고기를 가끔 먹어주게. 이틀 이상 건너뛰면 안 되네. 냉장고에 넉넉히 넣어두긴 했는데, 만약 비어 있다면 사냥해서라도 먹어야 하네. 그것들은 고기 냄새를 싫어해. 웃기지 않은가? 초식 동물, 뭐 그런 것도 아니고. 다만 냄새를 너무 풍기지 않게 조심해야 하네.
十八.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때가 올 걸세. 당황하지 말고 적어뒀던 일지를 읽으면서 기억을 되새기게. 그리고 각 신체 부위가 잘 있는지 확인하게. 손가락은 각 네 개씩, 발가락 다섯 개씩, 그리고 팔다리가 하나씩 잘 붙어있어야 하네. 모자라거나 부족하다면 집 안에 도구들이 있으니 그걸로 해결하면 되네. 방법이 없다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게.
十九. 간혹 비 오는 날에 사람이 우는 소리가 들릴 수 있네. 그럴 때는 절대 밖에 나가지 말고, 모든 창문과 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치고 있게. 누군가 들어오려고 해도 열어주지 말게. 아마 몇 시간 동안 소리를 지를 수도 있네. 설령 내 목소리가 들려도 절대, 절대 들이지 말게. 편지 내내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잘 기억해 보게.
二十. 다리에 검은 얼룩이 생겼다면 손으로 문질러 보게. 지워진다면야 다행이겠지만, 아니라면 상당히 유감을 표하네. 피부를 도려내도 얼룩이 남아 있을 걸세. 기필코 얼룩을 지워야겠다면 방법은 하나뿐이겠지. 가만히 놔두면 얼룩은 점점 더 퍼질 테니까 말이야. 그것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유감이지만, 그 방법뿐이네.
二十一. 라디오 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면 당장 구석에 웅크리고 귀를 막은 다음 입을 다물게. 절대로 소리를 내선 안 되네. 누군가 자네의 어깨를 두드려도 돌아보지 말게. 자네가 들은 건 라디오 소리가 아니네. 다시 한번 말하겠네. 우리 집에 라디오 같은 건 없소이다. 날이 저물고 다시 해가 떴다면 움직여도 좋네.
二十二. 해가 떴는데도 날이 흐리다면 빨래를 하게. 세제가 없어도 맹물로라도 빨래하게. 그것들은 냄새나는 것들을 싫어하니까 말이야. 만약 피치 못하게 그것들을 마주했다면, 냄새가 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의 주의를 충분히 돌릴 수 있네. 이후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곧장 다른 곳에서 밤을 지새우게. 운이 좋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갈 거야. 그 부엉이를 놓치지 말고 따라가게.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있어 중간 과정이 정말 중요하지만, 그래도 처음과 끝을 잘 해내야 가치가 있지 않겠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그러니 자네도 끝까지 살아남아 주게나.
이 편지를 남기기까지 나 대신 희생한 수많은 소형제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기며.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