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태양, 뜨지 않는 달
By 메리
댄스홀이 듣고 싶어. 최후의 식사를 요구하는 사형수처럼 툭 떨어진 생각이 바닥을 굴렀다. 안다. 다 알고 있다. 내일이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질 사형수가 뱉는 최후의 말을 들어줄 간수 같은 친절한 존재가 남아있는 환경 따위는 아니라는 것을. 투정 정도는 부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지난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면 말이다. 뻑뻑한 눈가 위로 팔을 얹었다. 손 끝에 흉터가 걸린다. 습관적으로 문지르면 아직도 시큰한 것만 같다. 불행 중에서도 다행스럽게도 빛이 좀 가려지니 눈이 느끼는 피로가 덜하다. 어둠에 대한 향수병이 깊게 상흔을 남긴 지금은 그 날로부터 2년 째, 밤을 잃어버린지 근 1년 째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작살이 났는가. 참 좋은 질문이지만, 반갑게 대답하기에는 마냥 적절한 질문이라고 쉽게 칭찬을 내어주기는 힘든 주제였다. 뭐⋯.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세상이라는것이, 체계라는것이. 또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것이 견고한 철옹성 같이 보여도 실상은 마냥 그러하지만도 않다는 것을 꽤 절실하게 깨닫기에 어렵지 않다. 늘상 비슷한,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기에 얼마나 쉬운가. 매일이 반복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일상이었다면 그 부재는 더욱 여실히 다가오는 법이다.
이를테면 그렇다. 해가 뜨면 낮이 오고, 햇빛 아래는 언제나 밝았다. 해가 지면 미약한 달빛과 사람들이 만든 옅은 조명에 의지해 어둠속에 의식을 의탁하고 잠겨들었다. 누구도 부정하기 쉽지 않을 만큼 거대한 자연의 순리지 않은가. 분명 그랬었다. 그것이 손을 뻗어 태양을 가린 것이다. 더이상 마음 놓고 의식을 놓을 수 있는 어두컴컴한 밤이란 존재치 않았다. 시적인 표현이나 비유 따위였다면 차라리 속이라도 편했을까 싶다. 말 그대로 사람의 머리 위에 존재 할 수 있는 조명이란 조명들은 단 한순간도 꺼질 수 없었다. 낮에도 밤에도 쏟아지는 빛 아래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생활 패턴이 어그러진다.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예민하게 굴 수 있는지는 말하기도 입이 아플 지경이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고작 사람의 예민함 정도가 아니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잊혀질 수 있는지. 그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공포였다. 서로는 더이상 서로를 기억하지 않았다. 곁에 사람을 두어 웃고 떠들어본게 언제였더라? 밤 중에 몸을 뒤채지 않고 얕은 잠에 몇 번이고 깨어났다 잠들었다를 반복하지 않았던 날들 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다. 피로한 눈두덩이를 내리 눌러 감아도, 그 위로 얹어둔 팔 밑으로 숨어 들어도 온전히 캄캄해지지 않는 시야만이 스스로가 가질 수 있는 어둠이라. 그 안은 쾌적하다고는 할 수만도 없으나, 아늑한 안식처라. 쉽게 이루지 못해 누적 된 피로는 쉽게 빈 손바닥을 낚아채어 깊은 잠 속으로 잡아끌어 미끄러지게 만들어버린다.
세계가 멸망 했어도, 하루의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로 일어나서,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입에 우겨넣고 테이블 위로 다리를 꼬아 올리고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멜로디를 따라 가볍게 흔들거린다. 얕게 노래를 흥얼거리면 기분은 좀 나아진다. 어쩔 때는 신나는 노래, 또 어쩔 때는 잔잔한 노래, 또 어쩔 때는 서로 어깨를 붙이고 웃어대며 다같이 불렀던 노래...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보면 정직하게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몸뚱이는 공복을 알리지 않는 법이 없었다. 무덤덤한 손길로 찬장을 열고, 냉장고의 문을 잡아당겨도 이미 애진작에 공복과 생존욕이 그 안에 있었을 것을 죄 씹어 삼켜 대었으니, 집 안에 남아있는 음식이 남아 있을리가 만무했다. 손바닥을 들어 눈두덩이를 눌렀다. 피로하고 뻑뻑하여 손바닥 안에 눌린 눈두덩이가 뜨거웠다. 입가로 한숨이 새었다. 그래. 그렇지. 나가야지. 제 자리에 고여있는다면 멈춘 시간 속에서 죽어갈 뿐이니까. 고민을 짧다. 밖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사라진 지금 거리는 어느 때보다 한산하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는 커녕 피 한 방울도 남지 않으니 어느 때보다야 쾌적하다. 갑자기 사람이 몽땅 사라지고 세상에 나만 남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같은 상상이 요구하지도 않았으나 현실에 똬리를 틀고 자리 잡은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달가운가, 물으면 곧 죽어도 그렇노라 대답을 내릴 순 없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함께 교류를 나누고 외로움을 달래지 못하면 금방 시들어버리고 마는 연약한 존재들이라 그렇다. 상념에 빠져 몸을 굴리면 창문 너머로 햇살이 한가득 쏟아지고 있다. 오늘도 밖을 나가기에 좋은 날씨임에 틀림 없다. 식량이나 좀 구해올까, 멍한 머리로 둔한 몸을 느리게 일으켰다. 때마침 라디오가 지직거리며 신호를 잡는 양 잠시 뜸을 들였다. 문을 열고 나가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으리라. 예상대로 문을 열고 나가면 전봇대 여기저기에 덩쿨처럼 전선을 감고 나팔꽃처럼 활짝 핀 스피커가 기계음을 뱉고 있었다.
N-3구역의 모든 전력이 금일 0시에 차단 될 예정입니다. 아직 그곳에 거주중인 생존자가 있다면 방송을 듣는 즉시 구역을 이탈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방송합니다...
요즘들어 듣는 사람 소리라고는 이런 것 뿐이다. 더이상 전력을 유지 할 수 없으니 기껏 나눠놓은 구역에 달아놓은 조명을 모두 꺼트리겠다는 것. 하나의 구역의 빛을 으스러트려 다른 구역으로 나눠주는 셈이다. 듣는 이도 없겠다, 솔직한 감상을 늘어놓자면 이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가에 대하여는 아니다, 라고 대답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를 죽여서 하나를 살리는 일의 반복이 그다지 좋은 징조는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다. 절멸 직전의 인류라도. 불꽃으로 뛰어들어야 사는 부나방 같은 삶이라고 해도. 그렇게 해서라도 연명 해야 하는 가녀린 삶이어서.
상념을 깨는건 별의 추락이다. 딱 한 걸음. 그정도만 걸음을 서둘렀어도 제 때 관리를 받지 못한 채 허공에서 전전긍긍하던 조명은 땅바닥에 처박히는 대신 머리 위로 꽂혔을 것이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놀라거나, 발걸음을 뒤로 물리는 대신 우두커니 서 제 명을 다한 조명을 내려다봤다. 그 산산조각 난 몸신의 어딘가에 시리우스 라는 별의 이름이 적혀있기를 어리석게도 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현실은 잔혹하게도 수십억개의 눈이 바라보는 가운데 펼쳐지는 쇼 따위일리가 만무했다. 입 안이 썼지만 이런 상상이라도 이어가지 않으면 명이 끊겨도 진작 끊겼으리라. 오늘 탐사에서는 인스턴트 우동이나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 쇼 같은 이야기보다 더 꿈 같은건 가벼운 일상 같은 이야기에 가까울 것이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으니. 그분은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나타나서 모든 것을 품는 자애로운 분이시라. 그분을 믿으라! 그분의 뜻을 따르라!"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아직 집에 먹여 살려야 할 자식이, 아아아악!!"
빛 하나가 스러졌다. 빛으로 지은 도시를 갉아먹는건 어둠이라는 이름의 공포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울음소리, 비명소리. 간청하는 소리... 그 사이로 지겹도록 익숙한 웃음소리 하나가 들렸다. 개자식. 왜 즐거워하고 있는거야? 사람이 죽었잖아. 사람 하나가 어둠에 찢거 죽었잖아. 결국 역겨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들을, 아니지. 그를 노려보면, 노골적으로 웃음소리가 커졌다.
"멍청한거야, 아니면 학습 능력이 없는거야?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는건, 그렇게 개눈깔로 올려다본다는건... 어둠에 먹힐 각오를 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엿이나 먹어."
"어이쿠, 무서워라."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새었다. 역겨운 자식. 무저갱의 지배자나,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기어드는 혼돈... 어쩌구 저쩌구. 뭐 그런 끔찍하고 모독적인 것들의 헌신이 있다면 저자식일 것이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저런 놈의 교리를 따르고 쫓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둠이라는 재앙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이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극단적인 정신 상태에 양 극단에 놓인 선택지만을 쫓았다. 어둠의 강대한 무력에 홀려, 빛을 쫓는 부나방처럼 어둠의 품으로 파고 들거나. 혹은, 어둠이며 사람이며... 온갖 위협 사이로 꿋꿋하게 나아가거나. 내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더이상 이 땅에서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서로를 물어뜯고, 다같이 어둠속에 잠식 되어버리자는 파괴적이고 정신 나간 발상엔 동조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어둑시니' 라고 불렀다. 자신들을 어둑시니라고 명명한 그 자들은 어둠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빛을 뺴앗아 어둠 속으로 먹이를 밀어넣듯 사람을 바쳤다. 그들의 교리는 하나 뿐이었다. 빛을 잃은 지금, 어둠만이 구원이다. 그들은 결국 이성을 잃은 괴물들처럼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포칼립스 사태가 발발 하였을 때, 그러니까... 인류가 아직 얼을 타며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때 그것에게 붙인 이름이기도 했다. 그것이 처음 나타난 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 몸집을 부풀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호기심을 가지고, 누군가는 경계를 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손을 뻗었고, 누군가는 뒷걸음질을 쳤다. 결과가 어땠을지 예측 할 수 있겠는가? 뭐, 뻔하지 않았겠는가. 사람의 시선을 받아먹고 성장한 어둠은 그 두 사람 모두를 잡아먹었다. 어둠이, 어둠에게 사람이 잡아 먹힐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자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그 때부터였다. 어둑시니라고 명명되어 있던 그것은 '그슨대' 라는 이름으로 재정의 되었다. 그것은 더이상 놀래키기를 좋아하는 유령 같은 것이 아니었다. 명백하게 우리의 삶을 위협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도, 빛 아래에 있으면 살만 했다. 어둠을 잃고, 밤을 잃어서라도. 여린 생을 연명 하고자 한다면 그다지 나쁠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어버린 탓에 마트에는 채 털지 못한 식료품들이 굴러다녔고, 사람이 일을 하던 자리는 대체로 기계가 채웠다. 원래도 기계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있었으니, 그다지 문제 될 것만은 없었다. 누군가의 공상처럼, 혹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은 살아갔던 흔적만 남긴 채로 덩그러니 도시만 남아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키는 장면. 그 사이를 걷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상상 할 수 있는, 세상 사람들이 나만 두고 모두 사라진다면? 같은 장면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리를 한지 좀 되어 까슬하게 올라온 수염을 문지르다가, 마저 발걸음을 옮겼다. 감상에 젖어 있기엔 갈 길은 멀었고, 살아가기엔 팍팍했으니까. 오늘은 김치우동을 두 봉지 집어와야지. 대충 그런 생각이 허공에서 돌다 사라졌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나? 범죄자 자식.”
“너는 좀 내 눈앞에 안 띄면 죽냐? 개자식아.”
“어~ 다른 구역은 작업이 다 끝났거든. 여기도 멀진 않았어.”
“뭐?”
“표정 살벌 한 것 좀 봐? 그러다 패겠다? 이력에 범죄 한 줄 더 추가하게?”
“시끄러워. 너랑 말을 섞느니 죽는게 낫지.”
“그분의 식사가 되겠다면 뭐, 말리진 않지. 근처에 돌아다니는 애들 많을테니까, 아무나 하나 잡고 도움이나 요청 해.”
“시끄럽다고 했다.”
거울은 언제나 반대를 비추는 것이 당연하잖아. 내가 화난 표정을 지을수록, 놈의 웃는 낯이 짙어졌다. 저걸 진작에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후회는 아무리 일찍 해도 늦다. 오늘의 해야 할 일을 손으로 꼽아본다. 권총의 탄창이 다 떨어졌으니 수급 하고, 다 무뎌진 나이프의 날을 갈만한 걸 찾아보고... 아직 제정신이 박힌 생존자가 있는지도 확인 해보고.
B-3구역, N-5구역, C-2구역의 모든 전력이 금일 0시에 차단 될 예정입니다. 아직 그곳에 거주중인 생존자가 있다면 방송을 듣는 즉시 구역을 이탈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긴급하게 공지를 뱉어내던 스피커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시들어버린 나팔꽃처럼 축 고개가 늘어졌다.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으려나... 불길한 감상이 뒷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성 싶었다.
…
죄 도망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갈급했다. 저마다 달려가는 발소리들이 심장 박동 소리처럼 울렸다. 어쩌면, 그다지 심장 박동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몰랐다. 이러나 저러나 생을 갈구하는 소리임에는 틀림 없으니까. 그러나 그 소리에 응답하는 자가 있을리는 만무했다. 저 멀리부터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형, 앵보야. 오빠, 두목... 여러 목소리들이 섞여 어떻게 해서든 저 어둠속에 함께 하자고, 이리로 오라고.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당신들은 이미 다 죽었잖아. 저건 다 허상일 뿐이었다.
“말했잖아.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게 이딴 소리였어? 사람들을 다 어둠 속에 처넣겠다고? 너희도 다 죽을텐데?”
“우리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알아? 아니지. 내가, 그렇게 멍청하게 보여? 나 살 길 만들어놓는건 당연한 거 아니야?”
“쓰레기 같은 자식.”
그 개자식이 크게 웃었다. 조명을 걸어둔 레일에서 조명이 유성처럼 긴 스파크로 꼬리를 남기고 땅에 처박혔다. 이 땅 위에 더 이상 안전한 곳 같은건 없었다. 남은건 캄캄한 죽음 뿐이었다. 저자식을 필두로 한 ‘어둑시니’ 만이 남아 자신만의 왕국을 세울 터였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발상에 토악질이 올라왔지만, 이제와서 막을 수도 없었다. 어둠에서 눈을 돌리며 귀를 틀어막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모든 생존자 여러분께 알립니다. 현 시간 부로 안전지대에 공급 되던 모든 전력이 차단 될 예정이며, 지지 않는 해 프로젝트는 전면 중단 됨을 밝힙니다. 부디,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늘상 기계음을 뱉던 스피커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애진작에 녹음이 되어 있던 음성이라는 소리였다.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 개자식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웃음이 새었다. 그렇구나. 아닌 곳에서 나타나서 모든 것을 품는 것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압도적인 어둠에 이지를 잃고 미쳐서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던 사람의 심정이 백분 이해가 되는 순간, 우리가 잃었던 밤을 돌려주듯 코앞도 보이지 않는 암전이었다.
다시 달이 뜨고, 해가 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