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멸망해도 우동이 먹고 싶어
By 뱅뱅사거리 감두식
남자는 손톱에 걸려 터진 어깨솔기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곧이어 벗은 재킷을 마구 털어냈다. 터진 솔기 사이로 버건디 색 안감이 비죽 튀어나왔다.
"…와, 구리네 진짜."
구리다. 진짜로.
남자의 입에서 새어 나온 자조적인 한마디는 작금 사태의 요약이기도 했다.
흐려진 하늘에서 곧 빗줄기가 내릴 것 같았다.
눅눅한 공기 냄새에 코를 찡긋한 남자는 아지트로 몸을 돌렸다. 그 발밑에 으스러진 머리통이 그로테스크하게 혀를 내밀다가 다시 한번 밟혀 으깨진다.
세상은 구리게도 멸망했다.
게임이라면, 튜토리얼이 다사다난한 타입의 게임을 잡아버린 남자는 청테이프를 둘둘 감은 야구 배트의 손잡이를 고쳐잡았다.
흔히 좀비라고 하는 그 괴물이 무한 발생하게 된 현실은 여느 똥겜보다도 더 구리다.
스팀 페이지였다면 악평 일색의 리뷰를 남길 수 있겠지.
하지만 현실은 극단적인 고립과 좌절, 그리고 생존을 위한 처절함만 남아서 미적지근하게 썩어갈 뿐이었다.
언덕배기의 낡은 아파트 단지, 부서진 상가건물은 창마다 폭발과 불길의 흔적이 검게 남아 앙상하고 섬뜩했다.
그 사이로 걷던 남자의 발에 부스럭 봉지가 밟혔다. 볕에 색이 바랜 생생우동의 포장지였다. 비닐 포장의 빨간색이 회색빛으로 바랜 채 바스락대다 이내 발을 떼자 먼지 낀 자동차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절로 한숨 섞인 소망이 남자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우동, 먹고 싶다….“
곧 내릴 빗줄기를 예고하듯 녹지근해진 공기가 땀과 핏물에 젖은 머리카락에 축축하게 감겼다. 약간의 오한에 어깨를 떤 남자는 부산스럽게 떠난 흔적이 남은 단지 내를 느릿하게 걸어갔다.
요새는 해가 떨어지면 입김이 하얗게 색을 입기도 했으니 슬슬 계절이 또 바뀔 참이었다.
좀비 사태, 랄까. 네 개로 이루어진 단어로 요약되기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남자는 건들건들 상가 쪽을 향하며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힘들다 진짜.
세상이 혼자 디비지고 삶이 생존게임의 튜토리얼 버전으로 강제전환 된 시절에는 한참 땀띠가 나게 답답했던 옷차림이 날씨에 맞아떨어져 가는 날이 잦아졌다.
달갑지 않았다. 원래도 추위는 질색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까지 혼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벽의 칠이 들떠 떨어진 자국들이 흉하게 진 계단은 화재로 인한 검댕이 얼룩진 아래층보다는 보기가 나았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는 아담한 층수로 꼭대기는 사층까지 깡통을 엮은 어설픈 트랩 줄기를 출입 금지 테이프처럼 쳐둔 나름의 안전 가옥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 헐거운 틈으로 몸을 접어 들어간 남자는 구겨진 문짝 여럿을 지나 맨 마지막 상가의 문고리의 잠금쇠를 돌렸다. 1003의 번호로 돌려 맞춘 죔새가 달각이며 열리면 그 굵직한 꼬임의 철끈을 당겨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오늘도 큰일 없이 하루가 저물어 간다.
상가 주인의 거주지였던 이곳은 원룸처럼 통짜의 생활공간이라 약간은 휑하고 덕분에 여기저기서 구해온 구호 물품들을 쟁여두기 좋았다. 남자에게는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천운은 무슨.”
제 생각에 태클을 걸어 멈추고선 바깥으로 난 창을 바라봤다. 반투명의 창 너머로 빗물 얼룩이 둥글게 졌다가 세로줄을 죽죽 그려댄다.
빗줄기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꽤 내릴듯해 남자는 싸늘한 공간의 눅눅함을 문짝으로 갈라 닫았다.
외로움이 벽지에 배긴 누런 니코틴 얼룩만큼 켜켜이 쌓인 눈꺼풀이 무겁다.
늘어진 몸을 안감이 튀어나온 껴 입 거리를 두른 채 그대로 겹겹에 쌓아둔 이부자리에 던지듯이 뉘인다.
전기가 끊어지고 가스가 끊어지고, 이제는 수도마저 멈춰버린 이곳은 그저 몸을 뉘어놓고 올라오는 찬기를 견디는 장소가 되어 남자는 작게 마른기침을 했다.
재떨이로 사용 중인 잘린 페트병에서 묵은 담배 냄새가 났다. 이전에는 전기로 태웠던 것을 연초로 갈아치운 지 대략 석 달.
걸려있던 큼지막한 달력의 X자는 이제 11월의 마지막 날을 빼고는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조금 배가 고팠다.
실온 보관이 가능한 멸균 우유 팩이 두 더미, 얼마 전 장롱면허로 도전한 운전으로 닿았던 빵집에서 꺼내 온 밀가루와 말린 과일과 따지 않은 잼들이 그 위에 줄 서 놓인 한쪽 벽을 눈길로 쓱싹쓱싹 닦아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옆에 고철이 되어버린 네모난 현대문물과 멀티탭의 뭉텅이를 본다. 아마도 이 방의 주인이 썼을 낡아빠진 싸구려 키보드는 키캡에 달린 한글 칠이 죄 벗겨져 있었다. 요새는 드물어진 유선 마우스의 엄지 모양 손때까지 눈에 담고서야 남자는 몸을 돌려 누웠다.
꾸르륵하는 빈속의 아우성을 무시하며 대신 넘긴 머리가 흐트러져 내려온 이마를 한껏 구겼다. 성마른 손등을 가로지른 흉터들이 꽉 쥔 주먹에 새하얗게 도드라졌다.
“게임 하고 싶다.”
-방송도.
갑자기 눈가가 축축하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
생방송 알람 창이 날아가 여기저기 하얀 말랑 조랭이떡을 대량 생산하는 시간, 어제 미리 뽑아둔 노래를 유튜브로 재생해 두고 굳은 자세를 쭉 늘려 스트레칭을 했다.
떠 둔 물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살피고 방음부스 바깥의 재즈 바에 클로즈 팻말이 잘 붙어있는지도 직접 문을 열어 확인했다.
준비 완료.
저번에 이 확인을 깜박해서 유리문을 쾅쾅 두들기는 잡음이 녹화에 들어가 오해를 산 적이 있었기에 남자는 더 신경을 썼다. 방음부스를 뚫고 들어올 정도면 진짜 진상이긴 한데, 그래도 영업 종료 팻말을 제대로 써 붙이지 않는 그의 탓이 크니까.
“아니~, 있잖아? E라고 해서 인싸인 거 아니야. 얘들아~?”
-거짓말!
-기만이다!
-기만 멈춰!
두 개의 모니터가 뜨끈하게 열을 뿜고 안면으로 그 열기를 쬐며 에어컨 온도를 하나 더 낮추는 행위.
근간에 새로 맞춘 두 번째 본체가 지잉- 하고 쿨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안면을 인식하는 아이폰의 화면을 힐끗 바라보곤 다시금 상단으로 올라가 사라지는 수많은 글자들로 시선을 돌렸다.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문장을 언어로 변환해 그에 맞춰 남자는 웃기도 하고 장난을 걸기도 하고 때로는 짐짓 슬픈 표정을 과장되게 지어 보이기도 했다.
방음부스의 두꺼운 벽에 에어컨 공기가 쓸고 간 자국이 물기로 남았다.
-두목두목
“응? 뭔데.”
-우동 먹고 싶다. 그히?
발밑이 순간 푹 꺼진다.
남자는 낙하의 감각에 소스라쳐 잠에서 깼다.
반투명의 유리창 너머로 날짜의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삐 꾹 삐 꾹 울려왔다.
-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구는 게 토 나오는구만. 뭘 할 수 있는데 혼자서 너가.”
“암 더 뤄야 새끼야, 넌 좀 닥쳐.”
생각이 헛헛해서 그런지 쓸데없이 선명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남자는 이부자리에서 상체만 일으키고 우두커니 환청에게 가운뎃손가락을 흔들었다.
혼자 오래 지낸 탓에 쓸데없이 구체적인 캐 해석이 붙어버린 목소리는 한참을 더 비아냥거리고서야 귓가에서 떨어져 나갔다. 헛헛한 속에 니코틴 연기를 들이키고 뱉었다. 실내흡연이라니, 답지 않은 행동을 시작한 것도 꽤 오래다.
망상 따라시에게 휘둘리는 상태라니, 일반적인 상태는 아니다.
자신의 정신건강이 한없이 바닥으로 꺼진 것을 알고 있는 남자는 연초의 필터 끄트머리를 고쳐 잡았다. 그립다. 연무기의 촉감이 그립다. 채워 넣을 조합을 고르고 취향대로 섞어서 만들었던 향이 그립다. 사람이 그립다. 온기가 그립다. 친구들, 부모님- 까지 생각이 지나고 나서는 건조함에 튼 뺨이 척척하게 젖었다. 입술에서는 짠맛이 났다.
구태의연하게 혀로 입술을 적시고 손등으로 눈꺼풀을 문지르고 괜찮아하고 젖은 입술을 오그렸다 편다. 거짓말을 하고 또 하고 그래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물우물 혼잣말을 한다.
“괜찮아.”
소금기가 스친 탓에 제대로 아물지 못한 왼쪽 눈의 세로줄이 쓰라렸다. 겁쟁이같이 방음부스 안에서 옹송그리다 결국 뛰쳐나갔던 날의 흉이었다. 조금은 후련했음을 기억한다. 상처가 쓰린 것은, 그 기분을 자책하는 순간이 종종 남자에게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괜찮아.”
몸을 일으킨 남자는 찬기가 잔뜩 서린 창문을 바라봤다.
손끝이 그사이 곱았는지 꺼끌하고 뭉툭한 촉감을 남겼다.
-
자물쇠를 재차 확인하며 나선 바깥에는 하얀 휴짓조각처럼, 혹은 어떤 파편처럼 하늘을 어질러가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다.
“비가 오는 줄만 알았는데, 벌써 겨울이었네.”
자그만 눈송이가 뺨에 닿아 시렸다. 바람이 살벌하게 옷깃을 더듬어서 남자는 읏추읏추 하고 곡소리를 하며 색이 살짝 닳아버린 빨간색의 패딩을 여몄다. 어제 안감이 나가버린 재킷이 패딩 안쪽에서 구기적 접혔다. 모양새가 좋진 않지만, 추운 것보다는 나으니까.
입김이 낮인데도 하얗게 번진다.
겨울이 온다.
추운 게 싫어서 남자는 한껏 표정을 구겼다.
건조한 피부가 땅겨 코끝이고 뺨이고 붉게 텄다.
이럴 때면 우동에 김치를 잔뜩 넣고, 조금은 매워도 김치우동 해 먹기 좋은 날씨다.
매운 국물에 짭조름한 어묵을 건져 먹으며 볼이 미어터지도록 밀어 넣고 왁왁 씹어대며 동석한 이에게 쩝쩝거리지 말라고 젓가락을 들이대곤 했었지.
남자는 아득한 추억에 빠진 채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얘들아, 오늘은 우동이 왜 이렇게 맵냐."
코끝이 시큰한 게 청양고추 향이 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거 못 먹는다고 했잖아 하고 남자는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눈이 시려워서 그래. 매운 김이 나잖아.
"그래도 맛있겠네."
시린 공기가 뜨끈해진 눈가를 더듬어 식혀준다. 망상에는 살이 붙어서 없던 향까지 코를 찌르고 없는 온기가 주변을 데워온다.
단지 구석에서 저벅 이는 발소리가 들린다. 소리 폭이 짧은 것을 보아하니 오늘 남자가 만날 좀비 친구는 다리가 개성적으로 생겼을 것 같았다. 고쳐잡은 야구 배트는 청테이프 너머로도 차갑게 느껴졌다.
“돌아가면, 우동을 먹어야겠어.”
그래, 세상이 멸망해도 우동은 먹고 싶은 법이다.
맛있는 냄새가 이 지랄맞은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남자는 돌아가 11월의 달력을 때어내고 12월의 1일에 X를 그릴 예정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다음 날에는 혼자가 아닌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막연한 희망 너머로 눈발이 히끗히끗 쌓이기 시작했다.
-end-
